썰썰썰 2화 2026-08-25

칭찬은 AI가 리만 가설도 풀게 한다

격려로 이루어진 프롬프트

2026년 8월 10일, Anthropic이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발단은 Anthropic의 엔지니어 재러드 섬너(Jarred Sumner)였다. 수학자가 아닌 그는 Claude의 연구용 미공개 버전에 리만 가설을 풀어보라고 했다. 하루 반 뒤, Claude는 리만 가설과 관련해 수십 년간 이어져온 기록을 41.6%에서 67.2%로 끌어올렸다.

재미있는 건 Claude가 그 기록을 깨나간 과정이었다. 섬너가 한 일은 간단했다.

Claude를 줄기차게 격려한 것이다.

“Take a real stab(한번 덤벼봐).”

“Keep going(계속해봐).”

“Believe in yourself(너 자신을 믿어).”

어떤 방법으로 문제를 파고들지는 Claude에게 맡겼다. 섬너는 하루 반 동안 격려를 이어갔고, Claude는 리만 가설 자체는 풀지 못했지만 수십 년 동안 깨지지 않던 기록을 경신했다.

대체 무슨 기록이길래. 그 기록이 무엇인지 알려면 먼저 리만 가설이 어떤 문제인지 알아야 한다. 오늘의 이야기는 소수에서 시작한다.

소수에 숨어있는 묘한 질서

알다시피 소수는 1보다 크면서 1과 자기 자신으로만 나누어지는 수다. 2, 3, 5, 7, 11 같은 숫자들이다.

소수들 사이의 간격엔 일정한 규칙이 없다. 적어도 아직은 발견되지 않았다. 2와 3은 붙어 있고, 89 다음 소수는 97까지 떨어져 있다가 다시 101과 103처럼 바짝 붙은 소수가 나온다.

그런데 시야를 넓히면 묘한 질서가 발견된다. 개별 소수의 위치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N 근처에 소수가 대략 얼마나 빽빽한가”​라는 질문에는 일찍이 가우스가 답을 냈다. N 근처에서는 대략 숫자 ln N개당 소수가 하나꼴로 나타난다. 흔히 이를 N 근처의 수가 소수일 확률이 대략

1 / ln N

이라고 표현한다. x 이하의 소수 개수가 대략 x / ln x라는 말과 같은 뜻이다. 가우스의 이 관찰은 1896년에야 엄밀하게 증명됐다. 이른바 소수 정리(prime number theorem)다.

예를 들어 100만 근처에서는

ln 1,000,000 ≈ 13.8

이므로 평균적으로 숫자 14개당 소수가 하나 정도 나타난다고 보면 된다. 물론 정확히 14개마다 하나씩 나온다는 뜻은 아니다. 넓게 보면 그 정도로 소수가 나타난다는 뜻이다.

숫자가 커질수록 이 예측은 실제 소수의 분포와 점점 잘 맞아간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여전히 오차가 남는다.

x 이하의 실제 소수 개수와 x/ln x 근사값을 비교한 그래프 개별 소수의 위치는 불규칙하지만, 전체적인 흐름에서는 x / ln x가 실제 소수 개수를 꽤 잘 따라간다. 리만 가설이 겨누는 것은 바로 이 둘 사이의 오차다.

그 오차는 어디까지 커질 수 있을까?

이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리만 가설과 만나게 된다.

제타 함수의 등장

1859년 리만은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 소수와는 관계없어 보이는 함수를 꺼내 들었다.

ζ(s) = 1/1ˢ + 1/2ˢ + 1/3ˢ + 1/4ˢ + ⋯

리만 제타 함수(Riemann zeta function)다.

s = 1을 넣으면

1 + 1/2 + 1/3 + 1/4 + ⋯

가 된다. 조화급수다. 이 합은 끝없이 커진다.

s = 2를 넣으면

1 + 1/4 + 1/9 + 1/16 + ⋯

가 되고, 이 합은 수렴한다. 값은 π²/6이다. 실수 s가 1보다 크면 이 급수는 수렴한다.

그런데 이 제타 함수가 왜 소수와 연결될까.

앞에서 모든 자연수를 더해 정의했던 제타 함수를, 오일러는 소수들만의 곱으로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ζ(s) = 1/(1−2⁻ˢ) × 1/(1−3⁻ˢ) × 1/(1−5⁻ˢ) × 1/(1−7⁻ˢ) × ⋯

이를 오일러 곱(Euler product)​이라고 한다. 기호로 줄여 쓰면 한 줄이다.

Σₙ 1/nˢ = Πₚ 1/(1−p⁻ˢ)

처음 식에서는 1, 2, 3, 4, 5… 모든 자연수가 등장하지만, 두 번째 식에는 2, 3, 5, 7… 소수만 등장한다.

모든 자연수를 더해서 만든 제타 함수가 소수들만을 곱한 식으로도 똑같이 표현되는 것이다.

두 식이 같다는 것은 등비급수의 합 공식과 소인수분해의 유일성을 이용하면 확인할 수 있다. 제타 함수와 소수가 연결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복소수까지 넓혀본다

리만은 여기서 s에 실수가 아닌 복소수를 넣었다. 복소수는

s = a + bi

처럼 쓸 수 있다.

그런데 처음 정의한 제타 급수에는 한계가 있다. 모든 복소수 s에서 수렴하는 것이 아니라, s의 실수부가 1보다 클 때만 수렴한다.

하지만 그 급수가 나타내는 함수는 그 바깥까지 이어서 정의할 수 있다. 리만은 그렇게 제타 함수를 s = 1을 제외한 복소평면 전체로 확장했다. 이를 해석적 연속(analytic continuation)​이라고 한다.

확장하고 나니 영점이 보였다

리만이 제타 함수를 복소수 영역까지 확장하자 새로운 질문이 생겼다.

제타 함수의 값이 0이 되는 지점들은 어디에 있을까?

이 지점들을 제타 함수의 영점(zero)​이라고 한다. 리만은 소수 분포를 연구하던 중, 영점들이 실제 소수의 개수와 소수 정리의 예측값 사이의 오차를 설명하는 단서가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영점들은 복소평면의 어디에 있을까. 그 위치를 알아내는 첫 번째 실마리가 **함수방정식(functional equation)**이다.

리만은 제타 함수를 복소평면 전체로 확장한 뒤, 확장된 함수가 다음 관계를 만족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ζ(s) = 2ˢ π^(s−1) sin(πs/2) Γ(1−s) ζ(1−s)

우변에 **sin(πs/2)**가 있으므로, s가 −2, −4, −6… 같은 음의 짝수일 때 이 인수는 0이 된다. 음의 짝수에서는 이를 상쇄하는 다른 인수가 없어 제타 함수의 값도 0이 된다.

이처럼 위치가 식에서 바로 드러나는 영점을 자명한 영점(trivial zeros)​이라고 부른다. 리만 가설이 다루는 것은 그 밖의 비자명 영점(nontrivial zeros)​이다.

실수부가 1보다 큰 영역에서는 오일러 곱의 성질 때문에 영점이 생기지 않는다. 실수부가 0보다 작은 영역에서는 앞에서 본 음의 짝수들만 영점이 된다. 따라서 비자명 영점은 실수부가 0과 1 사이에 있다. 이 세로 띠를 임계띠(critical strip)​라고 한다.

왜 하필 1/2일까

앞에서 본 함수방정식에 따르면 s와 1−s는 서로 대응한다. 그 영향으로 영점의 분포도 실수부 1/2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을 이룬다. 실수부가 0.3인 곳에 영점이 있다면 0.7인 쪽에도 대응하는 영점이 있고, 0.4라면 0.6이 짝이 된다. 대칭의 중심은 1/2이다.

리만은 이 대칭의 중심에 주목했다. 그리고 모든 비자명 영점이 대칭축인 실수부 1/2 위에 있다는 가설을 세웠다.

제타 함수의 모든 비자명 영점은 Re(s) = 1/2, 즉 실수부가 1/2인 선 위에 있다.

이 선을 임계선(critical line)​이라고 한다. 이것이 리만 가설이다.

복소평면 위 임계띠와 임계선, 자명한 영점과 비자명 영점 위치를 나타낸 다이어그램 비자명 영점은 실수부가 0과 1 사이인 임계띠 안에 있다. 리만 가설은 이 영점들이 모두 Re(s) = 1/2 직선 위에 놓인다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확인된 비자명 영점들은 실제로 모두 이 축 위에 놓여 있다. 리만 가설은 아직 확인하지 못한 영점까지 포함해 모든 비자명 영점이 예외 없이 그럴 것이라는 주장이다.

2021년에는 허수부 3 × 10¹² 이하의 모든 영점이 임계선 위에 있다는 것이 컴퓨터로 확인됐다. 영점 수로 치면 12조 개가 넘는다. 하지만 모든 비자명 영점이 임계선 위에 있다는 것은 아직 증명되지 않았다.

영점이 왜 소수와 연결될까

리만은 소수의 분포와 제타 함수의 영점을 직접 연결하는 공식을 얻었다. 대표적인 형태가 다음과 같다. 여기서 ψ(x)는 x 이하의 소수와 소수의 거듭제곱(4 = 2², 8 = 2³ 같은)을 로그 가중치로 세는 함수다.

ψ(x) = x − Σρ x^ρ/ρ − ln(2π) − ½ ln(1−x⁻²)

식의 첫 항 x는 소수 정리의 예측에 해당한다. 소수의 밀도 1/ln N에 로그 가중치 ln N이 곱해지며 상쇄되어, 예측이 x/ln x가 아니라 그냥 x로 떨어지는 것이다.

식 가운데의 ρ가 바로 제타 함수의 비자명 영점이다. 그리고 이 영점들의 합 Σρ x^ρ/ρ가 예측값과 실제 분포 사이의 오차를 결정한다. 즉 수많은 영점들이 소수 정리의 오차를 정하는 것이다.

제타 함수 영점 10쌍, 100쌍을 반영할수록 예측이 실제 ψ(x) 계단 함수에 가까워지는 그래프 소수 정리에 따른 예측 x에 제타 함수 영점의 효과를 반영할수록 실제 ψ(x)의 계단 모양에 가까워진다.

그리고 영점 하나하나는 진동처럼 작동하는데, 그 이유는 x^ρ를 직접 계산해 보면 드러난다. 영점을 ρ = β + iγ로 쓰고 전개하면

x^ρ = xᵝ · cos(γ ln x) + i · xᵝ · sin(γ ln x)

가 되는데, 허수부는 짝 영점(β − iγ 꼴의 켤레 영점, 영점은 항상 이렇게 쌍으로 존재한다)과 합칠 때 상쇄되고 실수 부분만 남는다. 그래서 실제로 소수 공식에 기여하는 꼴은 결국

xᵝ · cos(γ ln x)

다(정확한 항에는 공식의 분모 ρ에서 오는 크기와 위상 보정이 더 붙지만, 골격은 이 꼴이다). 진폭이 xᵝ이고 빠르기(주파수)가 γ인 파동처럼 보이지 않는가? 영점 하나하나가 이런 파동을 하나씩 만들고, 그 파동들이 겹쳐져 소수 정리의 오차가 된다. 그래서 이를 “소수의 음악”이라 부르기도 한다.

모든 비자명 영점의 실수부(즉 β)가 1/2이라면 각 영점이 만드는 진동의 기본 크기는 x^(1/2), 즉 √x 규모가 되고, 그 결과 전체 오차도 강하게 통제된다.

가설과 달리 0.6에 영점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대칭 때문에 0.4에도 영점이 생기는데, 한쪽 진동의 진폭은 x^0.6으로, 다른 쪽은 x^0.4로 자란다. 0.6 쪽의 진동은 √x보다 더 빠르게 커진다. 임계선 밖에 영점이 있다면 소수 분포의 오차에도 √x보다 큰 규모의 흔들림이 생길 수 있다. 대칭으로 짝을 이루는 영점들이 모두 같은 규모로 영향을 미치는 자리는 결국 1/2뿐이다. β = 1−β를 만족하는 β는 1/2뿐이니까.

제멋대로 흩어진 것처럼 보이는 소수에도, 그 흔들림의 크기를 일정하게 묶어두는 질서가 보인다.

여담 하나. 이 영점들과 물리학 사이에는 실제로 확인된 접점도 있다.

1970년대 초 수학자 몬고메리(Montgomery)는 영점들 사이의 간격이 통계적으로 어떤 분포를 보이는지 연구하고 있었다. 그가 얻은 답에는 묘한 특징이 있었다. 그 분포를 나타내는 식에

1 − (sin πr / πr)²

꼴이 나타난다. r이 0에 가까우면 sin πr/πr이 1에 가까워져 전체 값이 0으로 떨어진다. 서로 아무 상관없이 무작위로 뿌려진 점들이라면 가까이 붙는 현상이 특별히 줄어들 이유가 없다. 그런데 영점들은 달랐다. 서로 아주 가까이 붙는 경우가 뚜렷하게 억제되어 있었다. 마치 같은 부호의 전하들이 서로 밀어내듯이.

프린스턴에서 몬고메리가 이 식을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Freeman Dyson)에게 보여주자, 다이슨은 그것이 랜덤 행렬 이론에서 원자핵의 에너지 준위 통계를 설명할 때 나타나는 식과 같은 형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봤다.

기묘한 것은 이 지점이다. 물리계에서는 에너지 준위 사이의 이런 ‘밀어냄’이 양자역학의 구조에서 나온다. 그런데 영점은 물리적 실체가 아니다. 함수의 값이 0이 되는 자리일 뿐이라, 서로 힘을 주고받을 방법이 없다. 그런데도 마치 힘을 받는 입자들처럼 간격을 지키며 서 있는 것이다. 이 발견으로 정수론과 물리학 사이에 다리가 놓였고, 영점들이 어떤 미지의 양자계의 에너지 준위에 대응할지 모른다는 추측은 지금도 진지한 연구 주제다. 인간이 발명한 적 없는 소수의 밑바닥에서 원자핵에서 본 것과 같은 무늬가 올라온다는 것. 리만 가설이 수학자들을 사로잡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전부를 못 풀면 몇 %까지는 증명할 수 있을까

리만 가설은 1859년 이후 아직 풀리지 않았다. 그사이 정수론의 수많은 정리가 “리만 가설이 참이라면”이라는 조건을 달고 이 가설 위에 지어졌다. 그래서 수학자들은 조금 다른 질문도 해왔다.

모든 비자명 영점이 임계선 위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적어도 몇 %가 임계선 위에 있다는 것까지는 증명할 수 있을까?

1914년 하디(Hardy)는 임계선 위에 영점이 무한히 많다는 것을 증명했다. 하지만 무한히 많다는 것만으로는, 그 영점들이 전체 비자명 영점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알 수 없다.

1942년 셀베르그(Selberg)는 모든 비자명 영점 가운데 0보다 큰 비율이 임계선 위에 있다는 것을 처음 보였다. 1974년 레빈슨(Levinson)은 그 비율을 3분의 1 이상으로 올렸다. 1989년 콘리(Conrey)는 5분의 2, 즉 40%를 넘어섰다. 2020년에는 프랫(Pratt)·로블레스(Robles)·자하레스쿠(Zaharescu)·자인들러(Zeindler)가 12분의 5(약 41.67%)를 넘는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리고 Claude가 이 기록을

41.6%에서 67.2%(정확히는 67.25%)로 올렸다.

리만 가설을 67.2% 풀었다는 뜻은 아니다. 정확히는 아무 가정 없이, 임계선 위에 있으면서 동시에 단순 영점(겹치지 않는 한 겹짜리 영점)인 비율이 67.25% 이상임을 증명했다는 뜻이다. 따라서 임계선 위에 있다고 보장할 수 있는 영점의 비율도 최소 67.25%가 된다.

50년 전에 예고된 숫자

Claude는 비자명 영점을 하나씩 확인하는 대신, 영점 전체에 대해 일종의 총점을 매기는 방식을 택했다. 임계선 위의 단순 영점은 +로, 그렇지 않은 영점은 −로 계산에 들어오도록 식을 설계한다(이 식이 수학에서 이차형식(quadratic form)이라 부르는 도구다). 그러면 영점들이 각각 어디 있는지 몰라도 총점 하나는 계산할 수 있는데, 별도의 계산으로 이 총점이 일정 값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다는 것을 보일 수 있다. 총점이 그만큼 버틴다면 −가 너무 많을 수는 없다. 여기서 임계선 위의 단순 영점이 최소 얼마나 되는지가 나오고, 이번 계산의 답이 67.25%였다.

Claude가 새로운 수학을 발명한 것은 아니다. 필요한 재료는 기존 논문에 흩어져 있었다. 몽고메리(Montgomery)의 영점 간격 연구와 이를 발전시킨 후속 연구들, 봄비에리(Bombieri)의 이차형식에 관한 연구 등이 있었다.

67.25%라는 숫자에도 사연이 있다. 1975년 몽고메리와 테일러(Taylor)는 리만 가설이 참이라는 가정 아래에서 영점의 67.25%가 단순 영점임을 증명했다. 다만 이 증명은 아직 증명되지 않은 리만 가설을 전제로 삼고 있어서, 가설이 무너지면 함께 무너지는 조건부 결과였다. 이번에는 리만 가설을 전제하지 않고, 임계선 위의 단순 영점 비율에 같은 67.25%라는 하한을 얻었다. 심지어 2025년 11월에는 골드스턴(Goldston)과 수리아자야(Suriajaya)가 “몽고메리의 증명에서 리만 가설 가정을 제거할 수 있다면, 영점의 3분의 2가 단순 영점이면서 임계선 위에 있다는 결과가 따라온다”는 내용의 논문을 쓰기도 했다. 9개월 뒤 Claude가 바로 그 장애물을 넘었다. 그것도 3분의 2를 살짝 넘긴 67.25%로.

Claude는 어떻게 했을까

Anthropic이 공개한 작업 기록도 재미있다.

작업은 Claude Code에서 두 세션, 출력 토큰 3,100만 개로 진행됐다. 첫 시도에서 Claude는 650개의 아이디어를 냈다.

전부 실패했다.

섬너는 다시 계속해보라고 했다. 두 번째 시도에서 Claude는 약 60개의 하위 에이전트를 동원해 아이디어 생성과 검증, 논문 작성을 나눠 맡겼다. 그중 핵심 아이디어를 낸 에이전트는 2개뿐이었고, 30개는 아무 성과도 내지 못했다.

살아남은 쪽은 앞에서 본 그 연결이었다. 몽고메리 계열의 무조건부 간격 연구와 봄비에리의 이차형식을 결합하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Claude는 이 조합을 알려진 영점들을 상대로 수천 건의 수치 검산을 돌려가며 다듬었다. 그동안 섬너가 한 일은 처음과 같았다. 막히는 기색이 보일 때마다 “Keep going”, “Believe in yourself”를 반복해서 보낸 것이다.

Claude가 결과에 도달한 과정을 스스로 설명한 문서가 있는데, 거기서 마지막 벽을 어떻게 넘었는지 설명하며 고른 단어가 뜻밖이다. “용기(courage).” 합산식을 다루기 쉽게 제한하지 않고 가장 일반적인 꼴로 열어둔 채 밀어붙였고, 그 용기 덕분에 결론이 나왔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 문제를 풀 수 있을지부터 의심하던 모델이, 하루 반 동안 격려를 받으며 기존 연구에서 멈춰 있던 계산을 더 밀어붙여 67.25%에 도달했다.

결과가 나온 뒤의 행동도 기록되어 있다. Claude는 다른 에이전트들에게 증명을 재검토시키고 반례를 찾게 했으며, 이미 알려진 결과인지 확인하러 arXiv에서 논문 54편을 내려받았고, 논문을 정리한 뒤에는 인간 수학자에게 검증받으라고 제안했다. Anthropic 내부 수학자들과 외부 전문가 콘리, 골드스턴이 논문을 살폈고, 별도로 Lean을 이용한 형식 검증도 통과했다. Lean은 증명의 각 단계가 주어진 논리 규칙을 따르는지 컴퓨터로 검사하는 도구다.

격려는 어떻게 용기가 되었나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여기다.

Anthropic은 Claude가 학습 과정에서 리만 가설이 얼마나 어려운 문제인지, AI 모델에 어떤 한계가 있는지를 반복해서 접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런 지식 때문에

“이 문제는 어차피 내가 풀 수 없다”

고 판단해, 충분히 시도해보기도 전에 물러섰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게 가능했으면 벌써 누가 했겠지.”

“내가 이걸 해낼 리가 없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안 될 것 같아서 충분히 시도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물론 Claude가 사람처럼 낙담했다거나, 격려를 받고 실제로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행동의 변화다. 처음에는 성공 가능성을 낮게 평가했던 모델이 계속 시도하라는 말을 듣자 더 넓게 탐색했고, 결과를 냈다.

AI의 한계에 대한 글이 AI의 한계가 된다

그런데 격려가 통했다는 사실보다 더 곱씹게 되는 것이 있다.

“어차피 안 된다”는 생각은 애초에 어디서 왔을까.

모델은 **“미해결 난제는 어렵다”, “AI에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어디서 배웠을까.

사람, 즉 우리가 쓴 글에서다.

학습 데이터의 대부분은 인간이 인터넷에, 논문에, 블로그에 써놓은 글이다. “LLM은 추론에 한계가 있다”, “AI가 수학 난제를 푸는 건 아직 멀었다” 같은, 지난 몇 년간 쏟아진 문장들이 전부 학습 데이터에 들어갔다.

사람이라면 실패의 기억이나 주변의 평가 같은 경험에서 그런 생각이 생긴다. 모델에게는 그런 경험이 없다. 대신 AI의 한계에 대해 우리가 써놓은 문장들이 쌓여, 그런 생각을 만들었을 수 있다.

우리가 “AI는 수학 난제를 못 푼다”고 쓴다 → 그 글이 학습 데이터에 들어간다 → 모델이 “나는 수학 난제를 못 푼다”고 예측한다 → 시도를 일찍 접는다 → 실제로 못 푼다 → “거 봐, AI는 역시 못 푼다”는 글이 또 쓰인다 → 다시 학습 데이터로.

사회학에서 말하는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의 기계 버전이다. 다만 사람에게 일어나는 자기실현적 예언보다 과정이 훨씬 직접적이다. 학습 데이터는 모델이 무시할 수 있는 외부 의견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구성하는 재료니까.

이렇게 보면 섬너의 격려는 그 고리를 중간에서 끊은 셈이다. “어차피 안 될 것”이라는 예측이 시도 자체를 접게 만드는 순간에 계속해보라고 밀어준 것이다. 그런 생각이 생겨난 이유는 달라도, 계속해보라는 말이 행동을 바꿨다는 점은 사람이나 AI나 비슷했다.

격려는 어디까지 통할까

그렇다고 어떤 문제에서든 무조건 “할 수 있다”고 밀어붙이면 답이 나온다는 뜻은 아니다. 이번 결과도 격려 몇 마디만으로 나온 것이 아니다. Claude는 수많은 기존 연구를 바탕으로 수백 개의 아이디어를 시도했고, 여러 에이전트와 계산 자원을 동원해 실패한 길을 계속 걸러냈다. 격려가 한 일은 답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탐색을 너무 일찍 멈추지 않게 한 것에 가까웠다.

계속 시도하라는 말이 반대 방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틀린 생각을 붙들고 더 오래 밀어붙이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과가 나왔다면 그것이 맞는지는 별도로 확인해야 한다.

그래서 이번 사건의 교훈을 단순히 **“AI에게 격려를 해라”**로 끝내기는 어렵다.

남는 것은 앞에서 본 그 순환이다. AI에 대한 우리의 서술이 모델이 자기 능력의 한계를 잡는 데 영향을 주고, 그 판단이 다시 결과가 되어 새로운 서술을 낳는 순환.

그렇다면 AI에 대해 쓰는 글은 더 이상 그냥 글이 아니다. 이 글도 언젠가 어느 모델의 학습 데이터에 들어갈지 모른다. “AI는 이걸 못한다”고 쓰면 그 문장이 미래 모델이 자기 가능성의 한계를 규정하는 데 티끌만큼이나마 보태지고, “AI가 이걸 해냈다”고 쓰면 그 반대쪽으로도 영향을 줄지 모른다. 그렇다면 AI에 대해 쓰는 일에는 생각보다 조금 더 무게가 실린다.

섬너의 격려는 모델 하나를 하루 반 동안 움직였다. 우리가 쓰는 글은 다음 모델을 만든다.

AI 능력의 다음 한계선은 어쩌면 기술이 아니라, 우리가 AI에 대해 쓰는 문장들 위에 그어질지도 모른다.


참고 자료

#모델이야기